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즈먼드 투투 (문단 편집) === 그 후 === 인종차별 정책은 사라졌지만 그 앙금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풀어야 할 것들도 많았다. 만델라 정권은 진실, 화해 위원회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당시에 저질러진 모든 종류의 범죄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고 위원장으로는 투투가 임명되었다. 당연하게도 투투가 위원장이니 만큼 위원회는 흑인들의 피비린내나는 복수판이 되지 않았고 흑인들까지 공정하게 밝혀내며 공정성을 유지했으며 과거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느냐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를 제시하며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다. 그 후로는 투투는 공식적인 행동을 대체로 삼가고 있으나 미국의 FLAN 게릴라 석방을 호소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남아공의 중요 인물로서 남아공의 경기들에 참관했다. 아무래도 아파르트헤이트 투쟁 때 가장 저명한 인사로 '''[[넬슨 만델라]]''' 가 있었지만 2010년 당시에 '''92세'''의 고령이었고 더군다나 6월10일에 있던 전야제가 끝나고 귀가하던 만델라의 손녀가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해 6월11일 개막식에 참석 할 수 없어 투투 대주교가 대신 나왔다.[* 나중에 만델라는 7월11일로 예정된 결승전 전날인 7월10일에 나오긴 했다. 고령으로 거동조차 불편했지만 외투를 껴 입고 (남아공은 남반구라 6월부터 8월까지가 겨울이다.) 폐막 전야제에 나와 관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2010년]] 7월 22일 그는 모든 공식적인 행사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투투 대주교의 신학적 성향은 성공회 내에서 광교회적 성향 내지는 자유주의-고교회적 성향인 것으로 보인다. 복음주의적 성향(저교회적 성향)과는 거리가 있다. 이후엔 해외의 좌파인사와 민주세력과 교류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냈고, 2013년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2015년 자신의 딸인 음포 앤드리아 투투(Mpho Andrea Tutu)가 네덜란드에서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고 강복을 내려주었다.[* 아프리카 성공회는 대체적으로 보수적이여서 동성애를 배격하지만 투투 본인은 자유주의에 기반해 동성애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mCgssPpVnB4, height=270)]}}} || ||<#264355> '''[[템플턴상|{{{#white 템플턴상}}}]] 시상식에서 연설하는 투투 대주교'''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